인코그니토
p.119. 대부분의 사람들이 흘낏 본 이성을 훨씬 더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골목을 돌거나 운전을 하다 지나가는 누군가를 곁눈질로 봤다면, 당신의 지각 시스템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봤을 때보다 그 사람을 더욱 아름답다고 평가할 것이다. (...) 이러한 '흘낏 본 효과'는 일상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다. 가령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흘낏 본 뒤 '지금이 아니면 저런 미인을 얻을 수 없다'며 좇아가 얼굴을 확인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좀 전에 본 것만큼 아름답지 않다. 종종 겪는 일인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시각 시스템은 스쳐간 작은 정보만으로 같은 사람을 더 아름답다고 믿는 걸까? 확실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어째서 그녀를 그저 그런 외모라고 평가하지 않은 걸까?
이는 '번식 욕구'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잠시 스쳐간 못생긴 사람을 아름답다고 믿었다 해도, 다시 돌아가서 확인만 하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매력적인 상대를 잘못 판단해 놓쳐버리면, 당신은 잠재적으로 장밋빛 유전적 미래에 작별을 고한 셈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각 시스템은 흘낏 본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잘못된 평가를 내린다. 다른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뇌'가 반대편에서 굉장한 미인이 스쳐 지나갔다고 지각하는 것이다. 그 편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pp.204-205. 만일 자유의지가 신체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뇌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최소한 일부 뉴련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껏 뇌에서 다른 부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곳'은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모든 뇌는 다른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부분도 독립적이지 않고 자유롭지도 못하다.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로는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물리적인 공간'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이제까지의 내용은 현재까지 축적된 지식을 근거로 한 예측일 뿐이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물리적인 개체(뇌의 물질)'와 '비물리적인 개체(자유의지)'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상태다.
p.205. 사람들은 인간의 의지가 정보를 전달받는 명령사슬의 '마지막'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p.207. 예측 불가능한 시스템과 자유로운 시스템 간의 차이를 살펴보자. 탁구공으로 쌓은 피라미드가 무너진다면, 수많은 공들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공들은 '결정론적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고 해서, 모든 탁구공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우리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할 주장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patternicity-finding-meaningful-patterns/
https://repository.upenn.edu/neuroethics_pubs/8/
Neuroethics: the practical and the philosophical
In comparison with the ethical issues surrounding molecular genetics, there has been little public awareness of the ethical implications of neuroscience. Yet recent progress in cognitive neuroscience raises a host of ethical issues of at least comparable i
repository.upenn.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