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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멋진날
orono
2019. 5. 27. 18:47
오랜만에 비가 내려 제법 시원해진 늦은 오후에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을 택해 걸었다.
분명 처음 걷는 골목이지만 내가 주로 다니는 골목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한 번 가보려했던 닭강정 가게는 어느새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마카롱 가게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어 왠지 섭섭하지만
처음 보는 아담한 동네 카페가 눈에 들어와 작은 위안을 준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데 조금 전까지는 기분 좋게 흩뿌리던 비가 제법 굵어졌다.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집으로 걸어오니 집을 나설 때 느끼던 시원한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옷 속에 갇힌 내 더운 기운이 비만큼이나 굵은 땀이 되어 흐르는 듯하다.
가지 않은 길과 하지 못한 말에 대한 후회가
종종 뒤늦은 모험과 용기로 이어지곤 하지만
대부분 허무한 실망으로 끝나곤 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과도하게 부풀어버린 기대가 문제였는지 늘 울적해하면서도
긴 시간 만나지 못한 소중한 사람에 대한 상상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이제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보다 만 책과 영화를 조금 보다가
졸리면 잠에 들 것이다.
내일은 비 소식이 없어 오늘보다 훨씬 더울 듯하니
오늘처럼 지극히 평범한 하루도 조금은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