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재밌게 보고난 후에 도서관에서 '파시즘'을 검색했더니 꽤 최근에 번역된 이 책이 뜨길래 바로 빌려 보았다. 1장 '고전적인 파시즘의 부상과 몰락'은 다큐의 내용을 떠올리며 꽤 재밌게 읽었다. 옮긴이 후기에도 언급되었듯 책 전반의 내용이 편향된 분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기는 하나 출판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숨쉬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권의 고전을 발견했다며 기뻐해야 하는가 아니면 과거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현재에 슬퍼해야 하는가...
p. 45. 나는 이런저런 형태의 행동을 촉구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오만이 두렵다.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이데올로기 선동가들의 오만, 절반의 진리를 온전한 진리라고 여기는 실증주의자들의 오만, 정치적&경제적 전투의 더러운 혼란에서 고고하게 동떨어져 있으려는 이론가들의 오만, 그리고 끝없이 이론적으로 부딫치고 논쟁하기를 회피하면서 자칭 '실용적인'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오만이 두렵다. 나는 울트라리치나 그들을 위해 일하는 고위 경영자들뿐 아니라 기술관료들의 오만도 두렵다. 나 역시 이런 오만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파시즘 반대'를 맹목적으로 외치다 빠질 수 있는 사각지대의 함정도 두렵다.
-Arnold Beichman, Nine Lies About America (베이크먼이 지적한 것은 근시안과 맹목성이 모든 정치 스펙트럼에 존재한다는 것)
p. 59. "바이마르공화국이 살찌던 이 시기는 나치가 삐쩍 마르던 시기였다."
-David Schoenbaum, Hitler's Social Revolution
p. 67. 이탈리아는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은밀히 약속받았던 영토를 받지 못하게 되자 승리의 과실을 나누는 데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일본 지배층은 일본이 중국으로 팽창정책을 펴는 것을 미국과 영국이 점점 더 강하게 반대하는 것에 모욕을 느꼈고 연합군이 국제연맹규약에 인종 평등을 명시하지 않기로 하자 분개했다.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에 분노했다.
p. 74. 파시스트들이 계속해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열강 중 제국주의, 군사주의, 억압과 압제, 인종주의를 사용하지 않고서 자신의 지위를 다진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파시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 중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세 나라(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더 강력한 열강들이 썼던 동일한 방법을 단지 확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p. 118. 자본가들은 돈과 권력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가를 필요로 했던 적이 결코 없다. 그보다는, 돈과 권력이 분리돼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론가들이 적어도 한 세기 이상 노력해야 했다.
p. 220. "나의 삶을 헌신할 만한, 그렇게 해서 지킬 만한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므로 질문만 불길하게 허공에 떠 있게 된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런 것은 전혀 없다' 혹은 '거의 없다'고 답할까 봐 두렵다.
p. 350. "군사주의는 군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매우 큰 군대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군사주의는 일종의 정신이나 관점을 말한다."
p. 427. 공화당은 더 분명하게 기업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며, 국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자연스럽게 져야 할 의무보다 굳이 더 많은 것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민주당은 복지, 군사 지출, 제국적인 의무 등을 빠르게 확대시키기를 원하는, 조금 더 멀리 보는 소수 기업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공화당은 완고하게 반대하며 고집을 부릴 수 있다. 어차피 민주당이 그런 일들을 밀어붙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과감하게 확장적인 제안을 내걸 수 있다. 어차피 공화당이 확장 속도를 제어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p. 497. 체제 자체가 그가 굴려야 할 바위이자 그의 구원이다. 체제 자체가 예속의 사슬이자 구원의 동아줄이다.
p. 507. 기업 인센티브 시스템의 핵심은 (명시적인 목적이 '소규모' 기업을 돕는다는 것일 때조차도) 기업이 감수해야 마땅할 위험을 사회로 전가하고, 부유한 자의 성공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그들이 더 부유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p. 540. 기득권의 알 수 없는 속성을 대하는 어려움
p. 548. 사회과학에 기망이나 착각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착각은 지원금을 신청할 때 예상되는 결과를 과장함으로써, 또 이런 과장된 주장들을 정당화하는 지원금과 계약 발주에 의해, 그리고 공인된 '권위자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정당화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정치인들의 인정에 의해 강화된다. 사회과학의 각 분야는 각자의 전문화된 착각을 만들어낸다. 과점 기업들의 행동에 지침을 준다고 착각하는 계량경제 모델, 칼 케이슨이 말한 "영혼을 가진 기업",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기관은 대학이라는 대니얼 벨의 주장, '긍정적인 강화'를 주입받은 사람들이 "자유와 존엄을 넘어" 더 유익한 조정을 할 수 있게 된 자동화된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B. F. 스키너의 비전 등등. 이상하게도 정신과 의사들은 다른 이들의 기망과 착각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 것이 직업이면서도 거대한 기망과 착각에 가장 잘 빠지는 것 같다. 하워드 P. 롬이 전 세계가 그들의 "구역"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G. 브록 치점이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이 인류의 근미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며 "다른 누구도 이것을 할 수 없고 이것은 오로지 정신과 의사들의 핵심적인 책임"이라고 말한 것에 누구의 착각이 필적하겠는가.
p. 553. 노엄 촘스키는 "역사를 살펴보면, 체제를 파괴해야 한다고 가장 크게 소리친 사람들이 나중에 새로운 억압 체제에서 관리자가 되는 게 그리 놀랄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p. 585. 때로는 독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책의 내용에 잘못 투사하기도 하고 책의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책의 논의를 과도하게 단순화하기도 할 것이다.
pp. 639-641. 오늘날, '무엇이 이뤄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거나 다른 이들에게 행동을 미루려 할 때 매우 유용한 위장막이다. (....) '사람들은(우리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실제 세계에서는 행위자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피해가는 좋은 방법이다. (...) 이제 누가 나에게 '우리가' 혹은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 '우리'나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누가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이 질문이 구체적으로 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간주하고서 내가 교육자로서, 저자로서, 때로는 정치 활동가로서 해온 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 생각에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이렇게 접근하면 '행위자 없는 행동'의 세계,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수준의 세계에서 떠돌던 논의를 구체적인 행위자들이 존재하는 실제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질문은 '이곳에서, 저곳에서, 아니면 다른 어느 곳에서, 당신이 가진 지위와 역량으로 지금 그리고 앞으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바뀐다.
https://www.nybooks.com/articles/1976/09/30/the-narcissist-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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