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블랙 미러> 첫 시즌을 보았다.

 

 첫 에피소드는 SF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다른 두 에피소드와 달리 지독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상대적으로 울림이 컸다. 물론 돼지가 준 충격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만약 첫 에피소드를 2-3시간 정도의 정치 범죄 스릴러 영화로 만들거나 10편 정도의 에피소드로 늘려 한 시즌의 장편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허술한 공주 납치 과정이나 납치범의 의도 등을 더욱 상세하고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이 드라마의 주제 의식을 고려하면 납치 사건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과감히 생략하고 납치 이후에 여러 인물과 집단들이 보여주는 반응과 대응에 집중한 연출이 매우 훌륭하다. 그 엄청난 사건도 고작 1년 후에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머나먼 과거의 사소한 해프닝 취급을 받는 지독히 현실적인 결말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 공주의 생명과 총리의 존엄성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가 낳는 도덕적, 사회적 고민들은 온데간데 없고 타인(총리)의 굴욕을 국가적인 구경거리로 즐기는 듯한 언론과 대중의 잔인함이 인상적이다. 

 

 사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허술하거나 불친절할 정도로 없는 에피소드는 두 번째 에피소드다. 핫샷에 출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인지 아니면 미래의 세상을 압축적, 상징적으로 묘사해놓은 공간인지 어디에서도 설명해주지 않아 답답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말만큼은 첫 에피소드를 뛰어넘는 희열을 선사해주었다. 체제의 부조리를 까발리는 반체제인사마저도 너그럽게 포용/포섭하여 체제 속으로 회유할 힘을 가진 섬뜩한 현실에 대한 우화라고 극찬한다면 너무 멀리 나간 것일까. 첫 에피소드가 '비판'이라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메타-비판'으로 봤다는 얘기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종종 생각하곤 했던 소재에 대한 이야기라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고 괜찮은 소재를 주인공의 치정에만 국한해 다루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는 시대에도 해석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한계를 확인하여 기쁘다고 해야하나 씁쓸하다고 해야하나...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며 목격자가 없어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에서 죽은 피해자나 곁에 있던 동물 등의 두뇌에 남아있는 기억을 CCTV처럼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나의 상상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리 독창적이지도 않고 순전히 바람직하기만 하지도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주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다시 가입해 누리고 있는 한 달의 무료 기간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어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시즌5까지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고 다음 시즌에서는 기대가 커진만큼 크게 실망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당장은 오래 곱씹을 드라마를 보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무료 기간이 끝나고나면 그동안 넷플릭스에서 봤던 다큐, 드라마, 영화 등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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