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철학자의 패기가 느껴져 나름 신선하다. 요즘 세대에게 익숙한 최신 영화, 드라마를 자주 언급해 반가웠다. 어렵지 않은 철학 논의를 펼치겠다는 서두의 다짐과는 달리 몇몇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철학적이다. 

 

 

 

p. 11. 우리에게 나타난 것과 그 자체로 있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는 가정부터가 잘못이다. 그 자체로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인식 과정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빼버려야만 한다. 그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자체로 있는 것 이게 대체 무엇인가? 이로써 우리는 이미 무릎 깊숙이 철학에 빠지고 말았다.

 

p. 21. 수많은 작은 세계들은 단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아니다. 유일한 사실은 수많은 작은 세계들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p. 67.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유일한 영역으로 환원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너무 지나친 야심이다. 이런 시도는 어떤 식으로든 현실의 복잡함을, 또는 인간 인식 형식의 복잡함을 감당해 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유일한 영역으로 되돌리는 존재론적 환원은 기껏해야 학문적 게으름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pp. 150-151. 세계는 <그 어디도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포착되는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게 과학적 세계관의 주장이다. <그 어디도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표현은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의 것이다. 네이글은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게 그 어디도 아닌 곳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임을 꼬집으며, 진리의 문제에서 우리의 개인적 관심을 되도록 지워 버리려 애를 쓰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 속내를 품고 있다고 폭로한다.

 

p. 179. 인식론적으로 물리적 대상의 신화는 대다수 다른 대상에 비해, 경험이라는 흐름에 분명한 구조를 찍어 주기가 손쉽다는 점에서 더 탁월할 뿐이다. (Quine 재인용)

 

p. 192. 요점은 사물 그 자체라는 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현상들이 곧 사물 그 자체다.

 

p. 209. 자연 과학이 연구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참인 것은 많다. 

 

p. 260. 의학이 다루는 몸은 철저히 익명이다.

 

pp. 276-277. 마치 단 하나의 동질적인 대상 영역이 존재하고(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물 그 자체라는 현실), 우리가 그때그때 달리 접근하는 탓에(우리의 관점) 다르게 보일 뿐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p. 282. 지시체 없이 단어의 <향기>로만 의미의 연쇄 고리를 이끌고 오는(Frege 언급)

 

pp. 289-290. 추상 미술은 전반적으로 대상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그게 당연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추상화를 두고 반성적인 의미장을 다룬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추상화에서도 대상은 의미와 함께 나타날까? 그리고 페르메이르의 경우 작품의 반성적 의미장이란 무엇일까? 

 간단한 관찰, 곧 말레비치의 그림이 아무런 대상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관찰로 시작해 보자. 그림은 오히려 아주 익숙한 대상, 그러니까 흰 바탕 위에 그려진 검은 사각형을 보여 준다. 물론 예전 사람들은 미술이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그려 주기를 기대했다. 말레비치는 이런 기대를 거스르고 대상이 본래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지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모든 대상은 배경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러니까 의미장을 배경으로 깔고 대상은 우리에게 나타난다. 

 

 

Terry Eagleton, The Meaning of Life

Hilary Putnam, Philosophy in an Age of Science

Quine, Two Dogmas of Empiricism

Sellars, Empiricism and the Philosophy of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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