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최근 종영한 두 편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스토브리그>를 정주행하게 되었다. <사랑의 불시착>은 흥미로운 설정과 신선한 캐릭터들의 열연으로 박진감 넘치던 북한에서의 전반부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보았지만 주된 배경이 남한으로 넘어온 후반부 이야기는 조악한 설정과 진부한 로맨스가 반복되어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다. 고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스토브리그>를 보며 느낀 점을 기록해두기 위해서다. 

 

 야구 경기를 즐겨보며 여러 야구 기사들과 댓글들까지 종종 확인하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야구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어서 매우 반갑다. 드라마에 대한 여러 반응들을 살펴본 바 야구에 대해 큰 관심이나 지식이 없어도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듯 하다. 마치 의학 지식이 없어도 의학드라마를 큰 문제 없이 재밌게 볼 수 있듯. 더욱이 <스토브리그>는 야구 '경기'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제목이 말해주듯 야구 시즌을 준비하는 프런트 즉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기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드라마라 말할 수 있겠다. 

 

 먼저 야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밀어넣는 소재 대부분을 다뤘다는 점이 참 훌륭하다. 트레이드, 약물, 원정도박, 승부조작, 연봉협상, 전지훈련, 선수 스카우트, 2차 드래프트, 외국인 선수 선발, 세이버메트릭스, 프로선수의 병역 논란 등 굵직한 사안들에 만족하지 않고 팬들 사이에서 음모론처럼 떠도는 프런트와 현장 사이의 갈등, 비선수 혹은 실패한 선수 출신의 코치나 프런트에 대한 무시, 야구단에 대한 모기업의 소극적인 지원, 자극적이거나 왜곡된 기사나 보도를 양산하는 언론, 인신공격성 악플로 도배되는 인터넷 사이트 등 야구를 둘러싼 불편하지만 익숙한 현실을 큰 문제 없이 잘 다루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큰 미덕으로 꼽고 싶은 것은 남궁민의 무기력에 가까운 무덤덤한 표정과 태도다. 다름 아닌 야구로 인해 그의 가족이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 속에 살고 있다는 설정이 다소 식상하긴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쳐 흐르는 박은빈, 낙하산, 새 스카우트 팀장 등으로 인해 드라마가 자칫 '열정이 현실의 벽을 넘는다!'와 같은 케케묵은 드라마의 문법을 반복할 위험이 컸는데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일을 되게 만드는 그의 반전 능력이 드라마에 생동감을 선사한다. 사실 남궁민의 연기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박은빈이 안타까울 정도로 운영팀장 역할에 안 어울린다는 점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박은빈이 운영팀장을 연기하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데다 불안한 듯 떨리는 음색을 지니고 있어 거칠고 강단있는 말투와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운영팀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 몰입을 방해하곤 했다. 일례로 박은빈이 낙하산을 대할 때 '임마' 혹은 '새끼'나 '자식'과 같은 꽤 거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친 느낌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쥐어짜는 듯한 어색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물론 박은빈이 연기를 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차라리 운영팀장을 마케팅 팀장과 비슷한 나이대와 비중의 배우로 캐스팅하고 대신 박은빈을 낙하산처럼 열정이 넘치는 팀원으로 캐스팅했다면 더욱 훌륭한 드라마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박은빈의 캐스팅 외에도 임동규의 폭력, 스카우트 팀장의 비리 등 명백한 범죄가 제대로 된 처벌 없이 넘어가는 장면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각종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조롱받는 야구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얘기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임동규가 드림즈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차가운 단장의 따뜻한 면모와 스카우트 팀장이 해고 후 에이전트로 재등장하며 선사하는 긴장감을 고려하면 둘 다 살려둘(?) 가치가 충분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야장천 곱창만 먹어대는 드림즈 식구들의 한결같은(노골적인!) 식성과 무려 명랑한 핫도그를 저녁 메뉴로 배달시키는 박은빈 어머니의 어색한 소녀감성, 승부조작이라는 엄청난 소재를 단순한 오해로 일단락시키는 에피소드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남궁민의 연기와 함께 오정세의 열연도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더욱이 프런트 전체와 대립하는 악역 역할을 맡은 오정세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든 제작진의 연출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회는 다소 비현실적인 해피엔딩(급박한 매각 시한과 설득력 전혀 없는 PT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드림즈 매각과 PF 드림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뜬금없는 펭수의 특별출연으로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오정세의 제대로 된 자립을 지켜보며 그의 미래를 응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더해 드림즈의 해피엔딩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자신을 짓누르던 책임감의 무게를 덜고 '우승-해체'라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며 자신만의 해피엔딩 혹은 해피비기닝에는 성공한 남궁민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 또한 제법 그럴 듯 했다.  

 

 이런 드라마를 자주 볼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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