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염, 상향/하향 야만화 등의 표현이 참 흥미로웠다.  

 

 

 

 

우리 시대는 모든 신화를 근절하려 하면서도 스스로 신화를 창조한다.

-쇠렌 키르케고르, <불안이라는 개념>

 

p. 52. 우리 뇌가 무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우리 뇌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단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 뇌가 동일하다면, 뇌는 어떤 다른 시스템의 무의식적 결정에 종속되지 않으니까 우리는 자유로울테니까 말이다. 나의 뇌가 나를 조종하는데, 나는 다름 아니라 나의 뇌라면, 나의 뇌, 곧 나는 자기 자신을 조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가 손상되기는커녕 해명된다. 

 

p. 66. 심리 철학은 우리가 물리적 실재를 실재 개념의 표준 혹은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면, 의식적 실재는 이미 정의상 물리적 실재의 건너편에 놓이게 되고, 우리는 곧바로 물리적 실재와 의식적 실재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거나 제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p. 324. 신화 구성은 자기인식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방책이다. 이 방책은 오늘날에도 쓰이며 현재는 대개 다윈염에 걸려있다. <<나>>는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일까? 라고 묻고, 그에 관한 우리의 논의가 어떤 자기서술과 짝을 이루는지 역사적 지식까지 갖춰서 앞뒤가 맞는 대답을 내놓는 대신에, 실은 알 길 없는 과거가 증인으로 호출된다. 그 과거는 시간적으로 충분히 멀어서 오로지 두개골 화석 몇 점을 통해서, 어쩌면 창날 한 점을 통해서, 기껏해야 동굴 벽화 한 점을 통해서 입증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과거로부터 어떻게 유래했는지 거의 마음대로 이야기들을 지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pp. 379-380. 역사적 거리를 확보한 우리는 그 텍스트가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 실은 자유에서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바뀔(제거할!) 수 있는 특정 사회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텍스트가 하나의 자연(이를테면 <계집>의 자연, 곧 본성)을 꾸며 낸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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