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을 시작하기 전 예고편 한 토막.

부동산과 약속을 잡고 집을 보러 돌아다니면 보통 한꺼번에 여러 집을 소개받게된다. 집 보러 다니는 일이 생각보다 고되고 1억 안팎의 LH매물은 사실 고만고만한데다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집들만 본 탓인지 몸과 마음이 금방 지쳐버려 심각하게 상태가 나쁜 집만 아니라면 얼른 계약을 마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부동산 사장님이 "이 집 정도면 금방 나갈 거다. 더 둘러볼 것도 없다. LH매물 없다는 거 잘 알지 않느냐. 이만한 집 없다." 얘기하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간신히 마음을 추수르고 "며칠 생각해보고 연락드려도 될까요?" 물으면 "그 동안 다른 사람이 와서 보고 이 집 계약해도 나는 몰라요." 자동응답기처럼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괴로운 심정을 당신도 느끼게 될 것이다...


우선 나의 LH전세임대주택 계약 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2021. 5월 말 신청(신청 마감일은 6월 초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9월 초 선정 문자와 메일 도착
9월~10월 인터넷을 통해 LH매물 구경 및 탐색
10월 초 직접 발품을 팔며 매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
10월 중순 괜찮은 집 발견하고 가계약 후 권리분석
10월 말 권리분석 통과하여 집주인-LH 담당 법무사-공인중개사-나 모두 모여 계약 체결
11월 말 입주

신청부터 계약 후 입주까지 반 년 정도 걸린 셈이다.
내가 계약해 입주한 집은 전세보증금 1억2천(올전세)에 방이 두 개인 구옥 주택이다. 지상층에 관리비가 없으며 올수리되어 깔끔한 대신 옵션도 없다. 전용면적은 10평 정도 된다. LH에서 지원(대출)해준 금액은 1억1천8백만원이고 나의 자부담금은 2백만원 들었다. LH대출금액에 대한 월이자는 2%일 경우 20만원, 1.5%일 경우 15만원 정도 된다.

참고로 LH전세임대주택은 아파트 청약처럼 하늘에 계신 조상님께 기도해도 힘든 수준이 아니라 자격요건(소득, 자산 등)에만 부합한다면 모두 대상자로 선정되는 듯하다. 실제로 나는 이전에 LH매입임대에도 지원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져서 LH전세도 안 될줄 알았더니 이렇게 선정이 되었다.


반 년 전의 나처럼 LH전세매물을 구하는 이들을 위해 몇 자 적어본다면...

1. 매물은 주로 네이버 카페 <청년주택정보카페>, 전세임대포털, 네이버 부동산, 네이버 카페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네이버 카페 <국민주택클라우드>, 다방 등을 통해 탐색했다. 네이버 카페의 경우 내가 집을 구하는 지역의 매물을 올리는 부동산을 새글피드 등록해두면 빠르고 간편하게 새로 올라온 매물을 확인할 수 있다. 계약한 집은 전세임대포털에서 발견한 매물이다.

2.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으면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댓글이나 문자가 마음 편하고 덜 쑥스럽지만 응답이 늦거나 아예 없다. 내가 초조하게 부동산의 답장만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 전화로 부동산과 약속을 잡고 계약까지 완료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험담이기도 하고 오전에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매물이 저녁이 되기도 전에 계약완료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3.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매물을 직접 보러 다닐 때에는 권리분석 신청서, 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권리분석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다니는 게 좋다. 그래야 구경한 매물이 마음에 드는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가계약을 하고 부동산을 통해 권리분석 신청을 할 수 있다.

4. 내 경우 권리분석은 3일 정도 걸렸다. 수요일 아니면 목요일에 권리분석을 신청했는데 다음주 월요일에 법무사 사무실에서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청년주택정보카페>의 게시글을 보니 보통 일주일 안에 결과를 통보받는 듯하다. 집에 융자(등기부등본 을구 참고)가 없고 깡통 전세 등의 특이사항이 없으면 전액 통과되는 듯 하고 융자 등 특이사항이 있으면 선순위임차보증금 등을 고려해 보증금 일부만 통과되거나 아예 탈락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보통 권리분석 신청 이전에 가계약금을 걸기 때문에 권리분석 100% 통과 여부가 매우 중요한데 혼자서 마음 끓이며 고민하지 말고 자세한 사항은 부동산이나 전문가들에게 문의하기를 추천한다. 물론 100% 확실한 대답을 얻기는 힘들다...

5. 일반 전세매물도 구하기 어려운 시국이라 LH전세매물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좁은 방이나 반지층, 언덕이나 비역세권, 구옥이나 무옵션 등 일반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조건 한두 가지 정도는 타협할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 물론 자금에 여유가 있어 1억8천짜리 집을 구하거나 1억2천에 월세 30 하는 반전세 집을 구할 수 있다면 꽤 근사한 집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최대 한도인 1억2천 내에서 집을 구해야 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집의 조건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놓아야 일이 수월해진다.

내 예를 들자면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들은 1억2천 이하 올전세에 관리비 10만 이하, 투룸, 지상층, 평지, 역세권, 풀옵션, 올수리 등이었다. 선정 후 한 달 정도 LH매물을 탐색해보니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매물은 사실상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에겐 무엇보다 금액 조건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내게 남은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5~6평 이하의 원룸 vs 반지층 투룸


물론 발품을 팔면서 지상층 투룸을 소개받기도 했는데 대부분 구옥에 공실 기간이 오래되어 매우 지저분하며 주인이 수리해줄 생각도 없는 곳이었다. 좁은 집도 싫지만 더러운 집은 더더욱 싫었다. 비싸고 좁은 원룸에서 탈출하고자 LH전세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또 다시 좁은 원룸에서 살게될 것 같아 매우 절망스러웠다. LH에서 선정 문자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집은 필로티 구조에 주차장이 있고 널찍한 주방 겸 거실에 방이 두 개인 어느 동네에 가도 많이 보이는 빌라였고 1억2천 정도면 어렵지 않게 그런 집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더욱이 매달 LH에 납부해야 하는 대출이자와 원룸 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결국 이전에 살던 원룸에 내던 월세와 별 차이도 없어서 LH계약 자체를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매물을 검색하던 중 전세임대포털에 갓 올라온 올수리 조건의 구옥 지상층 투룸을 보게 되었고 서둘러 부동산에 연락하여 집을 보고 가계약한 후 권리분석을 신청하고 본계약을 맺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6. 이사는 짐싸 앱을 이용했다. 크고 무거운 짐이 없고 짐이 얼마 안되어 '차량만 이사'를 선택했는데 20km가 넘는 먼 거리라 그런지 8만원을 지불했다. 기사 8명의 견적을 받았는데 최소 7만8천에서 최대 15만원까지 차이가 꽤 컸다. 가전이나 가구 등이 있어 반포장 이상의 이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사 비용을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듯하다.

7. 이사 전 도시가스나 전기 요금 등을 이사정산해주고 이사 들어가기 전 연결 신청과 명의 변경 등을 해두면 깔끔하다. 나는 수리 후 첫 입주라 도시가스 연결 부품도 모두 구입해야 해서 설치비용만 3만5천 정도 별도로 들었다.

8. 이사 후 처음으로 부과된 건강보험료가 올라 있어 매우 당황했는데 이사 온 동네의 평균 전월세 가격이 이전 동네보다 높아서 일어난 참사였다. 알아보니 별도로 전월세 계약 내용을 신고하지 않으면 거주하는 동네 평균 전월세 가격이 자동적으로 내 자산으로 잡히는 모양이다. 집 근처 건강보험지사에 계약서를 가지고 가 사정을 설명하고 조정신청을 하니 잘 처리되었다. 아울러 이전에 살던 원룸도 전월세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아 지역 평균 전세금액이 자동으로 내 자산으로 적용되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이전에 내오던 보험료도 일부 환급받을 수 있었다. 이 역시 예전 원룸 월세 계약서를 함께 가져간 덕분이었다.

9. 앞서 말했듯 옵션이 하나도 없는 집에 들어왔기에 첫 달에 살림을 마련하느라 들인 비용이 꽤 컸다. 가족 찬스를 이용하거나 인터넷으로 구매해서 쿠폰이나 포인트 등까지 고려한 정확한 구매 금액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냉장고, 세탁기, 옷장, 침대 등에 더해 책상, 선반, 전자레인지 등 소소한 살림살이들을 구입하는 데 들었던 비용까지 생각하면 이사 첫 달에 100을 훌쩍 넘어 200 가까이 지출했다. 이러니 다들 풀옵션 집을 선호하지... 더욱이 오래 살 집도 아니고 최소 2년 최대 6년 살 집이니... 나는 풀옵션 보다는 지상층과 투룸이 더 중요한 조건이라 이런 선택을 했기에 후회는 없지만 넓은 무옵션 집과 좁은(혹은 반지층) 풀옵션 집 중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상당한 고민을 안겨줄 거액이다. 물론 무옵션 집은 관리비가 따로 없으니 보통 5만원이 넘는 풀옵션 집의 관리비(2년 거주할 경우 120)까지 고려하면 조금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10. 내가 너무 성급하게 가계약금을 지불한 건 아닌지 혹시라도 계약 후 더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는 건 아닌지 고민과 걱정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1억2천으로 신축급 빌라를 얻겠다는 비현실적인 욕심은 반드시 버려야하지만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서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집을 쫓기듯 계약하지 않으려면 카페나 주요 사이트에 올라오는 매물을 탐색하며 본인의 예산 범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의 평균적인 조건과 본인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해놓는 게 그나마 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1. 국회 일각에서 LH전세임대주택 지원보증금 한도를 높이자는 논의가 이뤄진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지원 한도 현실화가 가능해지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서울 기준으로 최소 1억5천에서 2억 이상까지 늘려줘야 그나마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을텐데 일반전세대출도 힘들어진 마당에 LH만 그리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겠는가. 설령 한도가 올라간다 해도 전세보증금이 LH한도를 따라가는 듯한 임대인들의 관행 아닌 관행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며 시중 금리 인상에 발맞추어 전세대출이율도 오르게 될 압력이 커지기에 쉬운 문제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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