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짧은 시즌이라 가볍게 보기 좋다.

극의 중심이 유아인-형사-새진리회-김현주-pd 등으로 빠르게 바뀌어 자칫 무겁고 어두운 극의 분위기가 낳을지도 모를 지루함을 덜어준다.

신의 '의도'를 독점적으로 해석하는 새진리회의 초대 의장 유아인이 실은 오래 전 '고지'를 받았다는 설정은 참 흥미롭다. 

유아인이 떠나고 형사가 감쪽같이 사라진 4년 뒤에 새진리회가 공권력이나 언론마저도 쉽게 주무르는 장면들은 비현실적인 듯 현실적이다. 이렇듯 이 드라마는 비현실과 현실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어서 쉽사리 '비현실적인 종교적 설정' 운운하며 배척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고지하는 천사나 시연하러 온 사자들의 모습은 분명 비현실적이지만 방송국 선배형을 찾으러 간 낚시터에서 형의 시연을 목격하고 소도 사람들을 만나 정신을 잃었다 아침에 깨어난 pd가 아침에 부랴부랴 아내와 아이가 있는 병원에 들어서는 얼굴이 매우 현실적으로 푸석푸석해서 참 보기 좋았다. 한참 자고 일어나도 머리는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고 피부는 갓난아기처럼 뽀송뽀송한 무늬만 현실인 드라마보다는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새진리회로부터 '죄인'을 숨기고 보호하는 대항단체의 이름을 '소도'로 정한 것은 참으로 기발하고 적절하다. 

마지막 회에서 박정자 씨가 다시 부활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과연 시연당한 모든 사람이 다시 부활한다는 뜻인지는 다음 시즌에 가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4년의 세월 동안 형사와 그의 딸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길래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인지도 다음 시즌에서 알게 될까.

김현주는 그동안 어떤 수련을 거쳤기에 그리 싸움을 잘하게 된 걸까.

아무리 부모의 사랑으로 감쌌다고 하나 고지받은 아이가 멀쩡히 살아남은 걸 어찌 이해해야 하나. 고지받았다고 알려진 아이가 살아남았다면 새진리회에서도 위기를 타개할 논리(아이가 고지를 받았다는 부모의 주장은 실은 새진리회를 중상모략하고 거룩한 신의 의도를 부정하려는 죄인의 거짓말에 불과했으며 실은 부부가 고지를 받아 시연당한 것이다 등등)를 마련할 수 있게 된 셈인데 왜 그리 맥빠지는 결말로 이어졌는가. 부모가 아닌 아이를 공격하는 사자들의 모습을 사람들이 똑똑히 봤기 때문인가.

안경 사제를 그리 무식하고 무모한 폭행범으로 만들어버린 장면은 안경 사제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 차라리 넣지 않았으면 더 좋았다. 더불어 새진리회 사람들을 화살촉과 다를 바 없는 그저 단순무식한 사기꾼 집단처럼 묘사해서 흥미가 반감됐다. 유아인 정도의 진지함을 갖춘 사람이 있었다면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친절하게 한국말로 고지하는 천사와 몽둥이로 때릴 수 있는 물리적 형체를 갖춘 사자들은 어찌 납득한다 쳐도 다음 시즌에서 이 모든 게 '임의적'인 일이었다거나 신을 흉내내려했던 악독한 인간의 계략이었다는 결말로 이어진다면 대단히 실망스러울 듯 하다. 

 

상식과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해석하여 설명(예측과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드려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보기 즐거웠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은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면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으나(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 이유가 필요한가? 당첨되면 그 뿐이다) 불행과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나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나는 나름 열심히 착하게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불행과 고통이 닥치는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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