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쁘지 않다. 아직 <정도전>에서 유동근이 열연한 이성계에 익숙한데다 <대왕 세종>에서 김영철이 보여준 이방원 연기가 뇌리에 깊게 남아있어서 김영철 버전의 이성계에 몰입하기가 조금은 어색하지만. 선동혁 배우가 또 이지란 역할을 맡아 살짝 아쉽지만 워낙 배역과 찰떡인 연기를 보여주는데다 이번에는 귀여운 아들까지 등장하니 용서가 된다. 다만 이러다가 <허준> 시리즈의 돌쇠 이계인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는 한다. 하륜에서 정도전으로 돌아온 이광기 배우에 몰입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릴 듯 하고.
조선 건국을 다룬 드라마는 매우 많고 대부분 큰 인기를 끌었기에 이번 드라마가 다소 식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성계의 아들이나 세종의 아버지 역할이 부각됐던 다른 드라마와 달리 유약한 문관 이방원이 피의 군주로 거듭나는 성장(?)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름 기대가 된다. 드라마의 첫 두 회부터 이방원의 아내가 앞으로 큰 비중을 담당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대왕 세종>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적 동지’나 다름 없던 여흥 민씨 일파를 몰살하는 과정에서 자세히 묘사될 이방원과 아내의 피튀기는 갈등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마찬가지로 신덕왕후가 되는 이방원의 계모의 역할도 꽤 크게 다뤄지고 이방원과의 사이도 꽤 돈독해 보이는데 조선 건국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1차 왕자의 난 무렵의 긴장감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정사에 따르면 신덕왕후는 방석이 죽임을 당하기 전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왕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이 자세히 묘사될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정몽주를 베야 하고 이복 형제들과 정도전 또한 죽여야하며 마침내는 형제들 또한 베야 하니 갈 길이 멀다. 이 뿐인가. 처가는 물론 사돈댁까지 도륙하게 되니... 이방원은 결국 자신의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을 죽이게 되리란 걸 알았을까...
3,4회를 보고 나니 <정도전>의 이인임처럼 무게감 있는 상대역이 보이지 않아 다소 아쉽다. 최영은 이미 죽어버렸고 이색이나 정몽주는 이렇다 할 힘이 없으니... 그래도 이방원의 성급함과 무모함이 이성계를 위기로 몰아 넣는 일련의 장면들은 이 실수와 실패가 앞으로 이방원의 정치력을 얼마나 성장시킬지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보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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