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은 '진보'나 '보수'라는 낱말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책의 내용은 주로 '말'에 집중한다. 현실 정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1장부터 인지언어학에서 얘기하는 은유 개념에 대한 설명이 쭉 이어져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책의 부제를 보니 '인지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였다. 물론 난해하고 지루한 인지과학 도서는 아니고 <국가는 가정>, <엄격한 부모 vs 자애로운 부모> 은유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언어와 도덕적 세계관을 간략하게 분석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목 번역이 다소 낚시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은 추천사나 옮긴이 후기, 축자적/치리/사상 과 같은 낯설고 어색한 번역 또한 아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인지언어학자의 대화 방식으로 책이 전개되면서 몰입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나는 오르다/떨어지다, 크다/작다, 길고/짧다 등의 은유를 사용했는데 책의 1장이 주로 이러한 은유의 문제를 다룬다.)
 
 
 
61쪽-62쪽. 'metaphor(은유)'는 어원이 그리스어이고 축자적으로 '사물을 다른 한 장소로 옮기다'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은유적 인지는 (보통은 더 추상적인) 한 인지영역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보통은 우리가 세계 내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다른 한 인지영역의 요소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이 두 영역에 이름을 붙이죠.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인지영역은 근원영역이고 더 추상적인 인지영역은 목표영역이라고요. 근원영역의 의미 요소와 관계 구조가 목표영역으로 사상됩니다. 그래서 이 개념적 과정은 은유적 사상이라고 불립니다. 그렇지만 주어진 한 근원영역의 모든 요소가 다 목표영역으로 사상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군요.
 
그 이유는 만일 모든 요소가 한 영역에서 다른 한 영역으로 사상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두 개의 개념적 영역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개념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유적 사상은 영역 A에서 영역 B로 모든 요소와 모든 구조를 다 사상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 완전히 포괄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은유에 대해 가장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 하나이죠. 은유는 자신을 제약하는 어떤 성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은유를 사용할 수도 있고 아예 은유적 구조가 없는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어떤 주어진 은유를 사용합니다. 이 경우에는 언제나 우리는 근원영역이 제공하는 구조에 국한하여 목표영역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근원영역이 제공하는 구조는 목표영역의 어떤 국면에 윤곽을 부여하죠. 따라서 은유는 목표영역에 내재하는 것을 감추기도 하고 부각하기도 합니다. 
 
은유적 인지의 이 선택적 본성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각에 상당한 함축을 지닙니다. 
 
그렇죠.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가 어떤 주어진 쟁점의 어떤 국면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어떤 국면을 무시할 것인가를 결정하니까요.
 
 
107쪽. 사회적 다윈주의는 사회가 꼭 자연환경처럼 작동한다 -사회의 인간이 연못의 물고기나 나무의 곤충과 같다- 는 개념을 바탕으로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이러한 의미의 '자연환경'이 아니죠. 인간 사회는 사람들이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두 영역 -사회와 자연- 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동일시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형이 대부분 오랜 세월 동안 자원, 규범, 법 등에 대한 인간의 의사 결정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죠.
 
 
209쪽. 우리가 은유를 통해 세계에서 많은 대상을 이해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대상이 덜 실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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