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원작으로 하여 JTBC에서 2015년에 방영한 드라마가 티빙에 있길래 며칠 몰아서 보았다.

무슨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12회만에 끝나버려 많이 아쉽다.

보기 어색할 정도로 감상적이고 뻔한 몇 장면들과 신임 수산과장 역할로 대놓고 악독한 인상의 배우를 써 오히려 극의 미묘한 긴장감이 떨어진 점이 다소 아쉽다. 극의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투입된 간헐적인 코믹신들도 그리 훌륭하진 않고.

그러나 드라마의 표현처럼 선한 약자와 악한 강자를 대비시키는 뻔한 고발성 드라마로 진행되지 않은 점은 참으로 만족스럽다. 

푸르미 마트의 노조 결성과 투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사간, 노조간의 갈등 양상도 매우 현실적이고 등장인물 각자의 과거와 사정도 무리 없이 공감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일상의 고뇌와 트라우마를 제대로 건드린 장면과 대사들이 매우 휼륭하다.

육사 생도 시절 '송곳'으로 나선 뒤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을 찾아와 따뜻한 격려와 공감을 전하는 듯 했으나 결국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순응하라고 압박한 간부의 일화는 얼마나 뼈저리게 현실적인가. 

동기들과 행군하며 주인공이 겪었던 심적 갈등 또한 아주 인상깊다. "마지막이고 싶지는 않으나 첫번째로 나설 필요는 없다"는 주인공의 고백은 마치 내 마음 같아서 슬펐다. 노조에 가입하라고 설득하는 주인공에게 마트 직원들이 하나같이 "남들 하면 한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도 내 마음이 송곳에 찔린 듯 아팠고. 

모난 돌이 정 맞고 어딜 가든 중간만 하는 게 가장 현명하고 속 편하다는 지혜를 떳떳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내 자식 세대에게 전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우리 모두의 최대치는 결국 중간 정도에 불과하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건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불편한 드라마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웹툰이 책으로도 출판되었고 자주 다니는 도서관에도 들어와 있어 차근차근 대사를 음미하고 기록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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