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최종철 역

 

 

아저씨, 잘 들어봐.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말고

가졌다고 다 빌려주지 말고

걷느니 말 타고 다니고

들었다고 다 믿지 말고

단판에 승부를 걸지 말고

술과 계집 버리고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스물의 이십 배보다

더 많은 걸 챙길 거야.

-1막 4장 114행~124행, 바보의 대사-

 

최악을 말할 수 있는 한 최악은 아니다.

-4막 1장 29행~30행, 에드거의 대사-

 

신들은 정당하여 우리가 즐기는 악덕을

우리를 징벌하는 도구로 삼는단다.

-5막 3장 168행~170행, 에드거의 대사-

 

 

사실 <리어 왕>의 비극은 이분법적인 사고의 승리인 동시에 패배라 할 수 있다. 코딜리아에게 이분법적인 없음 말고 다른 표현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리어의 가슴속에 있는 절대 긍정의 에너지가 그 반대편인 절대 부정 쪽으로 실핏줄만큼이라도 흐를 수 있다면 <리어 왕>의 비극성은 줄어들 것이다. 양극 사이의 교통이 존재론적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코딜리아의 사랑에 가 닿으려는 리어의 어리석고 성급하지만 처절한 노력 때문에 우리는 그 노력의 궁극적인 실패에 공포와 연민을 느끼게 된다. 리어가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을 절대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한 발짝만 앞으로 가면 될 것을 그는 줄곧 뒷걸음질로 코딜리아의 사랑을 얻으려 한다. 

-작품 해설, 193쪽

 

있음과 있음 간의 정면충돌만이 양쪽이 모두 옳기 때문에 그리고 어느 쪽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비극을 초래하는 것

-작품 해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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